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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칼럼 2023] 나날이 선물, 오늘의 바람 앞에서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3-08-23
조회수
279





나날이 선물이라고, 문득 자세를 고친다. 구름 사이로 틔어오는 빛이 찬란하다. 아침 공원에서 새삼 받드는 자연의 선물이다. 늘 보던 햇발이 유독 가슴으로 들이친 것은 구름장을 뚫었기 때문이다. 미세한 차이의 빛에서 찬란함을 느낀 까닭이다. 오늘의 선물로 새기는 마음을 깨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두 번 놀라운 빛의 선물을 받는다. ‘골든아워(Golden Hour)’, 지상의 모든 존재가 지닌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빛의 선물이란다. 화가며 사진가에게는 익숙한 개념이고, 그 시간대를 찾아 그리고 찍고 한 작품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무심히 지나치다 그 빛의 순간을 만나면 화들짝 다시 보게 된다. 제 일을 말없이 수행하는 자연의 위대함을. 그러면서 아침저녁 한 시간씩 지상의 존재들에게 하사하는 빛의 아름다움을. 낯익은 공간 어디서나 여는 빛의 향연도 그에 응답하는 마음이라야 즐길 수 있는 축복임을. 

사실 빛의 순간은 일상에서도 종종 마주치는 놀라운 선물이다. 골든아워가 아니라도 늘 만나온 것들에서 새로운 빛남을 찾아내면 발견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우리 주변의 산이나 천이나 사람살이 고샅에서 봐온 낯익은 것에서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오는 무엇을 찾으면 반짝! 새로운 선물로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모네 같은 특별한 사람만 빛의 특별한 순간을 감지하고 붓으로 뽑아내서 작품에 담아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똑같이 주어진 선물의 순간이라도 어떻게 느끼고 포착하고 표현하는가에 따라 작품이 되고 안 되고를 가르지만. 그럼에도 빛의 순간 포착은 우리도 나날을 새로운 눈으로 보면 만날 수 있고, 늘 보는 수원화성에서도 나날이 선물처럼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선물 또한 정조가 빚어낸 빛이 아닐까. 오래 빛나는 미학이 된 ‘고금미제’(古今美制, 고금의 아름다운 것을 화성에 모두 갖추도록 하라)라는 고마운 명령으로 만든 선물. 수원이 계속 즐기고 누릴 것 많이 건네주는 크나큰 복을 빚은 것이다. 그런 선물을 즐기듯 많은 이들이 수원화성 특유의 아름다움을 새로 찾으며 여전히 많은 발견으로 자신의 표현욕과 영역을 넓히고 있다. 마치 자신만의 골든아워를 구현하듯, 자신이 찾아낸 빛의 순간 같은 것을 또 다른 화성으로 펼쳐가는 것이다. 그런 것만 봐도 수원화성이라는 선물은 우리가 길이 새겨갈 표현의 동력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은 선물이 너무 없는 것 같다고. 그래도 조상 탓은 말자는 여유를 찾아보곤 한다. 수원에 사는 것만으로도 값진 선물 받은 것이라고. 세계유산을 선물로 받아든 도시가 어디 그리 흔하냐고. 게다가 20년이 넘도록 활약 중인 화성연구회에 들어 좋은 연(緣)으로 발화했으니 이래저래 잘 가꿔갈 빚이고 빛이라고. 그래서 각별한 연이라는 마음에 제멋대로 붙인 이름이 ‘화연’(華緣)이니 그리 기려도 무방할 것이다. 동네에서 문화유산 기리는 맛으로 서로에게도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아닌가. 때때로 나직이 당기는 불빛보다 소매 적시는 수작이 잦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지상에서의 그윽한 일이겠다. 무릇 선물이 좋은 마음의 발현이듯, 중한 마음의 유지도 자주 돌아봐야 하니 말이다.   

난폭한 폭염에 지친 심신에 빛을 보내기도 이웃의 선물. 나날이 선물임을 빛의 한순간에서 찾아 나누는 것처럼, 잠시만 돌아봐도 소소한 선물이라면 차고도 넘친다. 처서라는 가을로 들어서는 바람의 애무도 해마다 누리는 자연의 큰 선물인 것을. 그렇게 보면 빛의 순간도 습관으로 사는 나날을 다시 보라는 개안이요 갱신의 푸른 죽비라고 할 수 있다. 나날이 선물임을 다시 새겨보는 가을 입구에서 기꺼이 바람 죽비를 맞는다. 빛이 깃든 바람에 단맛이 들어간다.




글쓴이 : 정수자시인

주요약력
(재)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1984년 세종숭모제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조시인.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시집
『파도의 일과』, 『그을린 입술』,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 등.

연구서
『한국 현대시의 고전적 미의식 연구』 외에 공저 『한국 현대 시인론』, 『올해의 좋은 시조』 등.

수상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