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릴케(Rainer Maria Rilke)가 「가을날」이란 시에서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노래했던 그 가을이다. 폭염과 폭우 등 파란곡절이 많았던 지난여름을 보내고 맞이하는 가을 앞에서 우리도 릴케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 가을을 일컬어 흔히 사색의 계절이라고 한다.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우리 몸속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바캉스로 들떠있던 마음이 안정을 찾으면서 이성적이고 사색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색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만드는 말이 ‘독서의 계절’이다.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식과 경험을 쌓고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 스스로 사고하고 필요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9월은 독서문화진흥법이 정한 ‘독서의 달’이기도 하다. 이는 국민의 독서 의욕을 고취하는 등 독서문화 진흥에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로 이러한 계절의 가치를 표현했다. 그런데, 등불을 벗 삼아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그 말이 최근에 와서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책을 읽기 위해 가까이하는 스탠드 불빛이 아니라 스마트폰 불빛, TV나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을 더 가까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는 더이상 새삼스럽지도 않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와 게임,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골치 아프게’ 책을 왜 읽냐는 항변도 들린다.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받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휴식시간만이라도 여유를 갖고 싶을 것이다. 학생들은 또 어떤가. 학교에서,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 같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한가하게 문학이나 인문 교양서적을 읽으라니…. 학생들도 싫어하고 부모들은 더 싫어할 노릇이다. 대학 입시와 관계없는 책을 보는 것은 해악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책을 읽으면 머리가 더 아프고, 학교 성적도 떨어지기만 할까?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독서가 개인의 지적 수준 향상과 올바른 세계관 형성에 이바지할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삶은 물론 본인이 속한 사회적 가치까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줄 길라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축적한 다양한 지식과 간접경험은 정신적인 풍요를 안겨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물질이라는 자본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징검돌이 될 수도 있다. 독서의 퇴보와 부재(不在)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지식 기반 경쟁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학자나 학생, 작가나 출판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언어적 감성만으로는 시인이나 소설가, 기자가 될 수 없다. 기초 교양 없이 깊이 있는 사교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인문학적 지식 없이는 마케팅이나 광고홍보, 해외무역과 같은 고차원의 비즈니스 활동을 수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책이 없는 집은 문이 없는 집과 같고, 책이 없는 방은 혼이 없는 육체와도 같다”고 한 로마 최고의 지성 키케로(Cicero)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에디슨(Edison)은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다름없다”고 하였다. 데카르트(Descartes)도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에 걸친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며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길잡이로서 독서의 효용을 이야기했다. 위인들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의 사고력과 정서함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애민(愛民)’과 ‘개혁’으로 상징되는 정조대왕은 책 읽기를 좋아해 ‘독서대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어 중국에서 왔다거나 고가에 소장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사서 보곤 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국새나 어보 등 공식적인 도장이 아닌 자신의 개인 도장으로 장서인(藏書印)도 찍었다. 정조의 장서인은 단순한 취미나 놀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전하는 동기부여이자 학문 연마에 대한 채찍질이면서 독서 활동에 대한 약속과 다짐이었을 것이다.
또한, 정조는 어좌 뒤에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 병풍을 배치하고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자랑까지 했다고 한다. 책가도 병풍은 서가(書架)와 같은 가구를 중심으로 책은 물론 각종 귀중품이나 문방구, 화훼 등을 그린 그림인데, 정조의 명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선비의 사랑방을 장식하는 상징물로 인기가 치솟으면서 수요가 늘어났고, 사대부는 물론 민간으로까지 유행이 확대됐다고 한다.
이처럼 책과 독서는 정조에게 ‘우문(右文)’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정조의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우문’은 문화적 가치를 사회의 주요 지향점으로 설정하고 추진한 것이다. 힘과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거나 경제적 부나 군사적 우위를 국가적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곧 글을 읽고 이를 실천할 줄 아는 선비와 문사들을 우대하는 것을 의미하며, 문치(文治)가 훌륭한 정치의 바탕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문치란 글로 다스린다는 뜻이니 글이란 지식을 의미하고, 지식은 책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이 국가사회 운영의 기초였던 셈이다. 조선왕조가 국교로 채택한 유교의 근본정신 또한 문치주의였으니 정조는 이러한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대표자였다.
정조는 책의 출판과 지식정보를 활용하는 문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규장각도 설치했다. 국왕이 책을 가까이하고 출판·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지식기반 문화가 사회 저변으로 확산됐고, 학문적·문화적 수준 또한 덩달아 높아지는 성과를 보였다. 18세기 실학사상이 꽃을 피운 배경에도 정조의 책 사랑과 독서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책으로 대변되는 문치주의와 우문정치의 지향성은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지식기반사회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개혁군주 정조를 통해 Reader와 Leader가 동의어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임채성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 당선. 시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선집 『지 에이 피』. 중앙시조신인상, 정음시조문학상, 백수문학상, 한국가사문학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