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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에세이

정수자 | 詩, 낭독의 즐거움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2-04-15
조회수
463





, 하면 설레는 마음이 닿는다. 시낭송 소식에 미리 두근거리듯. 그런 낭독의 밤도 많이들 거쳐 왔을 것이다. 예부터 문()을 높이 여기며 시를 사랑해온 전통이 그만큼 깊다. 시의 나라다운 시사랑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인데 이는 꾸준한 시집 출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돌아보면, 한때 문학청소년 아닌 사람이 있었으랴. 특히 시에 빠져보지 않은 청춘이 있었으랴 싶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랭보)는 외침처럼, 질풍노도 때의 마음을 표출하기에는 시가 잘 어울렸다. 그런 한때 시에 기꺼이 빠져든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덤덤해진 뒤에도 소식이 닿으면 설레며 낭독회를 찾는다. 첫사랑 편지를 마음의 서랍에서 꺼내어 다시 읽어보듯.

 


시를 즐기기로는 정조도 시인 못지않았다. 직접 쓴 시도 많아 시인 정조로 불릴 정도다. 임금의 깊고 너른 공부가 당연한 조선에서도 그만한 호학군주를 찾기 어려울 만큼 정조는 공부벌레로 소문났다. 방대한 공부는 물론 시를 사랑한 정조가 기획한 화성은 그래서 수원의 축복이다. 군사시설인 성곽에도 아름다움을 앞에 두었으니, ‘조선 성곽의 꽃이라는 찬사가 길이 따를 만하다. 게다가 화성 오가며 쓴 정조의 많은 시편이 한층 그윽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

 


정조의 시 읽기는 그런 아름다움을 깨운다. 하지만 무엇이든 비추고 나누지 않으면 묻히게 마련이다. 시민들이 읽기에는 자료 찾기부터 노력과 시간을 요하니 그런 시편을 꺼내 함께하는 낭독을 지속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낭독은 시를 더 널리 더 깊이 더 새롭게 나누는 향유다. 함께하는 시인들의 시까지 읽으면 더불어 풍요로운 낭독의 밤으로 빛난다. 낭독으로의 초대부터가 이미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라 시인들이 발견한 새로운 여행을 같이 떠나는 셈이다.

 


낭독은 또 다른 발견의 즐거움도 열어준다. 문자를 넘어서는 표현과 전달의 차이를 낭독자와 독자가 다시 보기 때문이다. 묵독하던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데서부터 시의 맛이나 울림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런 까닭에 어조나 강약, 발음 같은 것들을 낭독으로 자기 점검하는 것은 물론 독자 반응을 통해 낭송 효과를 되짚기도 한다. 젊은 시인일수록 이른바 낭송가 낭송법이라는 과장이나 과잉을 꺼리는데 일방적인 혼자 읽기에 머물면 낭독을 재고해야 한다. 독자와 함께하는 읽기 공연 같은 낭독의 맛을 넓힐 필요가 있다.

 


소리 내어 읽기만도 낭독에는 좋은 점이 많다. 낭독이 발음이나 기억력 유지 등에도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생전에 서정주 시인은 아침마다 세계의 산 이름을 외우며 노년의 기억력 감퇴에 대응했다고 한다. 그처럼 매일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기억력 유지를 꾀하는 사람도 있다.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시의 맛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은 물론 꼬여가는 발음에도 정확성을 지키는 효과를 본다고 한다. 긴 글이 읽기 벅찰 때 짧은 시를 더 찾아 읽고 외우며 독서까지 느니 일석삼조라는 낭독의 발견에 덩달아 흐뭇했다.

 


소리 내어 읽던 천자문이나 기도문 등에서도 낭독의 힘을 다시 본다. 낭독에서 시의 중요한 요소인 운율이며 리듬을 일깨우는 계기를 새로이 만나듯. 시의 아름다움을 낭독에서 더 오롯이 느끼듯. 그러니 낭독의 밤을 계속 열어 즐거운 향유나 시적 도약을 너 널리 나눠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