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재단법인 정조인문예술재단

통합검색

문화사랑방

칼럼 · 에세이

[정수자칼럼 2022] 아름다움이 우선이라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2-07-28
조회수
378




아름다움이 우선? 순간 많은 생각이 몰려온다. 아름다움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차별적 인식부터 걱정된다. 아름다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신의 기준으로 미/추를 차별하면 곤란하다. 요즘은 사람들 외모 평가도 삼가는 인권 인식이 자리 잡았으니 표현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앞에 두어 아름다움을 더 크게 이룬다면? 정조가 화성 축성에 실현한 미의식에서 그 예를 본다. 웅려탈기(雄麗奪氣)와 고금미제(古今美制)의 미적 추구와 실현이 그것이다. 화성성역의궤蓋樓堞之雄麗亦足爲先人奪氣道(개누첩지웅려역족위선인탈기도)’에서 웅려탈기를, ‘漏槽五星池之制亦爲商確講究?古今美制咸備(누조오성지지제역위상확강구비고금미제함비)’에서 고금미제를 압축한 것이다. ‘웅장하고 미려한 것도 족히 적의 기상을 빼앗는 길이라는 인식과 고금의 아름다운 것을 화성에 모두 갖추도록 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

화성에 담긴 미의식과 실현 의지는 지금 봐도 놀랍다. 그런 인식과 미감을 축성 정신으로 담아냈기에 화성이 세계유산의 위상을 누리는 것이리라. 군사시설인 성곽을 쌓는데 더 아름답게 하라며 고금의 아름다움을 화성에 모두 갖추라고 촉구하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명령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성곽의 꽃을 탄생시킨 정조의 힘이 새삼 돌올하다. 그런 군주의 미적 감각이 있어 오늘날까지 화성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게다. 그렇듯 아름다움을 우선으로 여긴 정조 철학의 구현이 우리는 물론 후손에게도 아름답게 이어져야 한다.

 

아름다운 성곽의 도시. 그런 수원에서 더 아름다운 일을 만들어 하지 않을까. 먼저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 분야인 문화예술을 보면 지금까지 죽 봐도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지 싶다.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판에 시의 예산도 너무 적은 쥐꼬리의 반복이라 큰 기획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청 소재지로 도의 문화시설이 수원에 있어서 얼핏 많은 것 같지만, 시의 자체 시설은 다른 시보다 적고 열악하다. 시립미술관과 공연장도 최근에 갖췄으니 문화원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도서관 짓는 숫자에 비해 문학관은 1도 없다는 문인들의 자괴감도 그저 문학인의 몫이겠다. 도청 소재지이자 유구한 역사와 화성을 품은 문화예술도시로서의 품과 격이 민망하다.

 

조선후기 문화예술을 꽃피운 정조. 그 자신이 시인이라 현륭원과 화성을 오가며 쓴 시만도 여러 편이다. 문무를 높이 갖춘 정조가 자신의 이상을 꿈꾼 도시였던 만큼 문학에서도 큰 기획이 필요하다. 여느 도시들이 문학상을 제정하고 시상식을 지역축제로 펼치며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것에 비하면 수원은 궁리조차 없다. 문학상이나 학술상 제정은 정조인문예술재단에서 기획할 만한 문화예술사업이다. 문학상 축제가 곧 그 도시의 인문예술적 품과 격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지역의 인문 교양과 후진 양성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통영은 뛰어난 예술인이 많다지만 그런 예술()을 잘 기리면서 예향(藝鄕)으로 도시의 이름값과 위상을 높이고 있다.

 

문화인프라 부족은 그간 많이 나온 지적이다. 그 판에 재단이 짓는 테마공연장은 매우 중요하다. 행궁 앞이라는 위치도 무예24기 공연이며 다양한 문화예술 놀이터로 넓혀갈 수 있는 좋은 장소다. 화성 행궁을 주제로 하는 문화행사도 좋고 소규모 음악회나 시낭독회 그리고 영화 상영도 준비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행궁동 주변 동네의 문화적 활동과 발표회 장소로 활용하면 공간의 즐거운 확장을 이루게 된다. 그러려면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향유도 필요하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함께 만들려는 의지에서 실현된다. 정조의 아름다운 명령을 실행한 사람들의 화합으로 화성을 더 빛나게 빚어냈듯! 아름다움을 향한 마음도 서로 모아 나갈 때, 우리 도시의 문화예술이 더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주요약력

(재)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1984년 세종숭모제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조시인.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시집

『파도의 일과』, 『그을린 입술』,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 등.



연구서

『한국 현대시의 고전적 미의식 연구』 외에 공저 『한국 현대 시인론』, 『올해의 좋은 시조』 등.



수상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