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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칼럼] 심재덕, 혹시 정조대왕의 환생이 아니었을까?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2-08-22
조회수
419





오해하지 마시라. 문화재 답사를 하다가 절집에 들 때마다 부처님 전에서 삼배를 하곤 하지만 난 불교 신자가 아니다. 명동성당이나 전주 전동성당 등 오래된 성당에 가면 성호를 긋는다. 3년 전 ()화성연구회 여름 해외답사로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했을 때 이슬람 사원에서 무슬림들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명상을 하기도 했다. 춤과 노래 잘하는 안택굿 명인 고성주 씨 같은 무속인들과도 곧잘 어울려 막걸리 한잔씩 나누기도 한다. 즉 종교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이 없다.


어느 때 심재덕이란 인물을 떠 올리다가 문득 불교의 환생을 생각하게 됐다. 심재덕 전 수원시장에 대한 글을 쓰다가 그가 정조대왕의 환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두 분의 생각과 행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조대왕은 조선조 제22대 임금이다. 공교롭게 심재덕 시장도 제22대 수원시장이었다.

정조대왕은 인인화락 호호부실 인인화락(戶戶富實 人人和樂), 백성을 아끼는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군사, 정치, 경제, 농업 등 많은 부문에서 개혁을 추진했다.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고 실천했다.

심재덕 역시 수원문화원장 시절부터 시장,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때 문화와 행정, 지역발전을 위한 개혁에 앞장섰다.


수원문화원장 시절 수원천 복개 반대운동과 서호 개방운동, 외국산 담배 피우지 않기 운동을 펼쳐 성과를 거두었으며 수원사랑이란 월간잡지를 결호 없이 발행해 지역문화예술을 견인했다. 한여름밤의 음악축제,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한마당, 성곽순례 등 굵직굵직한 문화 사업들도 펼쳐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켰다.

수원시장 재임기간 중엔 월드컵 경기장을 짓고 월드컵 경기를 유치했다. 수원에서 화장실문화운동을 일으켜, 수원이 세계화장실문화의 메카가 되도록 했다. 퇴임 후에는 세계화장실협회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집도 화장실 변기모양으로 짓고 '해우재'라 이름 지었다. 그의 사후 해우재는 수원시에 기증됐고,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수원의 새 관광명소가 됐다. 수원컨벤션센터도 건립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정조대왕과 관련된 큰 업적을 남겼다. 빼놓을 수 없는 공적은 정조대왕의 명으로 축성된 수원화성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것이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등재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했지만, 그는 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회의가 열리는 프랑스에 가서 위원들을 설득해 등재를 성공시켰다.


<사진설명> 199926일 열린 세계문화유산 화성 표석제막식에 선 심재덕 시장(가운데)과 정조대왕·혜경궁 역(오른쪽 붉은 옷) / 사진 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22대 조선국왕 정조대왕이 만든 수원화성을 22대 수원시장 심재덕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세계 속에 알렸으니 하늘의 뜻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수원문화원장 시절부터 추진했던 화성행궁 복원사업도 이어져 시장 재임 때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문화관광의 도시가 됐다.

수원천 복개 반대 운동도 정조대왕의 뜻을 이은 것이라고 봐도 된다. 화성을 축성할 때 수원천의 자연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 규모?형식?구조 등을 결정했다. 수원천을 건너는 성벽 구간에 화홍문(북수문)과 남수문 같은 빼어난 부속 건축물을 만들었으며, 화홍문 옆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의 백미라고 평가되는 방화수류정을 만들어 하천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화성과 수원천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자연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조 때 조성된 서호를 살려 개방해야 한다는 운동도 그렇고 1996년 수원화성축성 200주년을 기념해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묘를 찾아가는 원행을 재현한 것도 모두 그런 맥락이었다. 심재덕은 생전에 수원의 정신적 뿌리가 된 사상이 임을 확인하고 알리기 위한 맥락에서의 사업이었던 것이죠. 당시 많은 예산 들여서 약 2100명가량 되는 사람의 신발, , 무기, 모자 등등을 준비하고 말까지 몇 십 필을 동원해서 지지대고개에서 시작해서 융릉까지 2천명이 능행을 재연했던 것은 수원의 정체성을 보이고 정조의 효행을 조명하기 위한 것이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고맙게도 나는 심재덕 시장과 많은 일을 함께 했다. 대표적인 것은 수원천 복개 반대운동, 서호 개방운동, 화성행궁 복원운동 등으로 내 평생 몇 안 되는 자랑거리다.

술이 거나한 날엔 버릇처럼 화성행궁 신풍루 앞 삼정승 느티나무 아래 잠시 앉았다 가곤 한다. 그 때 바람이라도 한 자락 불어와 나뭇잎 흔들리면 그분들의 목소리인 듯 귀 기울인다.




글쓴이 주요약력

1978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겨울 수영리에서』, 『부석사 가는 길』 및 공저 등.

시조문학 시조 추천 중부일보 문화 체육부장 역임.

한하운 문학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