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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에세이

[임채성] ‘말[言]’이 곧 그 사람이다!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3-05-11
조회수
300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채용하는 기준의 순서인데 사람을 쓸 때 몸(용모), (언행), (학식), 판단력(가치관)을 가지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본다는 뜻이다. 용모는 선천적인 것이므로 유전적 요소가 많아 본인의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불가피한 요소가 있다. 그러나 언행, 학식, 판단력은 후천적인 것으로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갈고 닦을 수 있다.

이런 후천적 요소들 중에서도 이 가장 앞쪽에 부각되어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사회활동을 하면서 말이라는 언어표현을 하지 않고는 생활하기가 어렵다. 사람이 언어로 소통하게 되면서 찬란한 인류문명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사람에게는 동물과는 달리 자신의 의사를 세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었기에 선조의 경험이 후대로 전달되고, 그 경험의 축적을 통해 진보의 발판을 구축함으로써 찬란한 인류문명을 꽃피운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말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든지 말만 잘하면 절에 가서도 젓국을 얻어먹는다!”는 속담까지 생겨나지 않았던가. ‘은 상대방에게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것이 지식인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이든 성직자의 설교·강론이든 술자리의 음담패설이든 간에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듣는 이에게 이해가 되어야 목적이 달성된다. 상대방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듣는 사람의 심기가 불편해지거나 말거나 자신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토로해버린다면 이는 부질없이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의 됨됨이를 보면, 풍채가 좋고 말씨도 품위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풍채는 그럴싸한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저속하거나 유치하여 실망감을 줄 때도 있다. 학교 주변의 식당이나 주점에서, 또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청소년들의 대화를 듣게 될 때,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들이 너무나 원색적이고 저질스러워 듣는 귀가 민망해질 때가 많다. TV 토크쇼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무식함을 자랑하며 이를 억지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연예인도 있다. 또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끼리 어조가 하도 높아서 대화가 아니라 싸움을 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런 현상은 모두 말하기 훈련의 부족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최고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말도 이들보다 나을 게 없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전국의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각 정당의 무차별적인 비방 및 선동 현수막을 비롯하여 대변인의 논평,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막말의 향연은 언어폭력의 난장판을 방불케 한다. 그들이 쏟아내는 말 어디에도 상대에 대한 예의나 품격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선거 때마다 쏟아져나오는 저질적인 네거티브 선동이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관차처럼 폭주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품격 없는 막말은 교육적으로도 해악을 끼친다. 초등학교나 중·고교 앞까지 점령한 정당 현수막의 저질 문구를 보며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옆으로 걸어도 너는 똑바로 걸어라는 어미게의 가르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배울 만큼 배웠고, 알 만큼 아는 인사들의 입이라면 최소한 막살이 인생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상식이고 정도(正道)일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는 민주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표공인이자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한 사회를 대표하는 공인이라면 대중의 쓴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감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 후에 촌철살인의 정돈된 한마디를 품위있게 내놓을 수 있어야 말발이 크게 먹히는 법이다. 그것이 권위이다. 큰 자리에 어울리는 큰 인물 소리를 들으려면 냄비에 물 끓듯 해서는 안 된다. 이유가 어디 있든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아직도 막말이 선호되고 애용된다는 사실에 기가 찰 따름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네 탓만 하는 반칙의 사회가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정신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너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다라고 하기보다는 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라는 긍정의 대화가 필요하다. “너나 잘해가 아니라 함께 잘하자라거나 나부터 잘할게라고 하는 사회라야 건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대화토론은 건전한 민주사회의 뿌리이자 밑거름이다. 말에 품격을 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지성인과 망나니가 구분된다. ‘이 되느냐, ‘주둥아리가 되느냐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저속한 막말이 하고플 때는 차라리 침묵을 택하자. ‘침묵은 금!’이라는 금언을 거울삼는다면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가 더욱 밝고 건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임채성>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 당선. 시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선집 지 에이 피. 중앙시조신인상, 정음시조문학상, 백수문학상, 한국가사문학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