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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칼럼 2024] 높푸르게 이어라, 우리의 율과 얼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4-10-28
조회수
220


돛 달아라, 이어라가 절로 나오는 시절. 돛 달고 배 저어가는 어부사시사흥취에 덩달아 부푼 시월이었다. 햇곡 올리는 신성한 달(음력 시월상달)로 기려온 전통에 각종 문화예술행사가 몰린 까닭도 있다. 그런 시월 하늘을 더 높푸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글날이 들어 있어서다. 세계 곳곳의 한국어 열풍이 한글의 아름다움을 날로 높이고 넓힌다는 소식이 이어라를 들깨우는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이르는 것처럼.

 

그런 한글 앞에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새삼 떠올린다. 한글의 위대한 창제를 이끈 세종대왕이며 집현전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창제 후 한글의 아름다움을 문학으로 널리 알린 사람들의 소임이 돌아 뵈는 것이다. 그중에도 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절정을 이룬 고산 윤선도는 한글로 문학성을 드높인 놀라운 선례다. 유배를 여러 번 오가다 고향 해남 땅에 눌러앉은 고산이 쓴 75수의 시조에 한글의 진경이 담긴 까닭이다. 어부사시사만 봐도, 고기잡이 현장의 실감과 실정을 유려하고 역동적인 가락에 얹어 한글의 미학적 정수를 펼치고 있다. 특히 언문이니 암글로 홀대 당하던 조선시대에 민족 고유의 시가문학을 한글로 빛낸 점에서 더 경이로운 선취라 하겠다.

 

근대에 오면, 최현배의 헌신적 한글 사랑과 연구가 우뚝해서 다시 숙여보게 한다. 일제강점기 탄압 속에 우리 국어로도 쓰지 못 하던 한글을 계속 연구한 외솔 최현배가 있어 오늘날의 한글이 더 떳떳할 수 있다. 외솔은 한글의 학문적 체계 잡기나 더 쓰기 편한 글로 자리 잡기 같은 연구에 몰두한 것은 물론 시조 쓰기까지, 한글 사랑을 일생 흔들림 없이 견지한 외길의 오롯한 학자 시인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 학자며 문인 중에서도 외솔이 연구와 창작을 올곧게 지켜낸 것이다. 한글 사랑을 나라 사랑의 실천으로 삼은 외솔의 앞에는 물론 선구적 한글학자인 스승 주시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외길 특유의 열정이 없었다면 한글은 오늘 같은 위상에 이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새삼 짚어보는 그들의 업적은 웬만한 사람은 아는 위업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 또 짚는가 하면, 시월에 두 사람을 기리는 문학행사가 연이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산의 고향 해남에서는 <고산문학축전>을 열어 고산문학대상을 24회째 시상하고, 외솔의 고향 울산에서는 <학술회의><외솔시조문학상>을 만들어 문학과 학술 분야에 번갈아 시상을 하고 있다. 그런 이름을 내건 문화행사는 한글로 이어오고 키워온 한국문학의 장을 넓히는 축제이자 지역의 문화축제로 거듭나며 문화 예술적 확장을 견인한다. 고산이나 외솔을 기리는 문학상 시상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문화 발전의 고무는 물론 한국문학 전반의 성장을 자극하고 고취하는 즐거운 계기로 작동하는 것이다.

 

앞선 문인들의 좋은 작품. 그런 작품이 바로 자신에게 끼친 문학적 영향력이라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도 꼽는다. 문학적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문인 인터뷰에 늘 나오는 질문에 내놓은 작가의 답은 현 세대 이전의 한국문학을 다시 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자기 지역 출신의 문인과 문학을 기리며 더 새로운 문학을 촉발하는 각 지역의 문학축제도 다양한 문학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마련하는 문학축제가 더 깊고 넓은 한국문학을 자극하고 견인하는 기회를 열어가는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수원은 정조의 덕에 따른 문화유산을 여럿 지닌 도시다. 수원화성과 조선의 의궤, 그리고 왕릉만 해도 여느 도시보다 많이 보유한 탁월한 유산들이다. 왕릉(화성시 소재라 같이 기리지만)은 화성과 함께 정조 행차며 축성 안팎의 길에 순도 높은 문학을 많이 낳은 유산이다. 무엇보다 정조가 시인이고 최고 학자 아니던가. 그래서 정조 관련 유산을 기리는 문학상이나 학술상 시상과 더불어 축제화를 꿈꿔보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축제만 높일 게 아니라 우리 지역도 문학과 학술을 견인하는 축제를 만들어 더 널리 향유하는 예술적 진전을 보고 싶다.



글쓴이


주요약력

(재)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1984년 세종숭모제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조시인.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시집
『파도의 일과』, 『그을린 입술』,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인칭이점점 두려워질 무렵』 등.

연구서
『한국 현대시의 고전적 미의식 연구』 외에 공저 『한국 현대 시인론』, 『올해의 좋은 시조』 등.

수상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