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날개가 내려앉은 곳 순천(順天)을 찾아
-정조인문예술재단 2020 가을 답사
홍순영(시인)
가을볕이 어깨를 감싸는 청명한 날, 정조인문예술재단 주관으로 순천(順天) 가을 답사에 나섰다. 코로나19 탓에 꼼짝 못하고 갇혀있던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깃을 털며 날아올랐다. 수원민예총 문학위 회원을 비롯한 이십여 명이 함께 순천으로 가는 길은 조금 멀었지만, 여유로운 좌석 덕분에 쾌적하게 갈 수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이달호 선생께서 낙안읍성과 관련해 성(城)의 종류와 축조 방법 등에 관한 말씀을 해주신 덕분에 답사 전, 지루함 없이 성(城)에 관한 사전 지식을 얻게 된 것 같아 좋았다.
낙안(樂安)에 도착하자마자 꼬막 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배가 불러서일까, 가을볕 아래 선 때문일까. 성벽에 올라 초가지붕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명도 없이 상처 난 가슴에 따뜻한 볏짚이 얹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성벽길을 걷는 모두의 얼굴마다 미소가 번졌다.
낙안읍성은 조선 초기에 축성한 협축식(夾築式) 형태의 평지성(平地城)으로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유적지 중 하나라 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향리가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향리댁 외에 들마루집, 서문성벽집 등, 조선 초 주거양식을 잘 보여주는 초가집들을 만날 수 있다. 유적지이면서 관광지인 이곳도 전보다 찾는 손님이 뜸해진 탓인지, 마을은 가까이에서 보니 퇴락한 느낌도 없지 않았으나 그 또한 풍경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몇 개 안 남은 까치밥, 아직 풍성한 감나무와 모과나무, 평상에서 뭔가를 말리는 아낙네, 제철도 아닌데 피어난 동백, 처음 보는 목화밭 등, 초가지붕과 더불어 가을의 모든 것이 낙안읍성에 고여있는 듯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낙안읍성을 한 바퀴 돌아보고 곧장 순천만갈대습지공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는다. 사람들의 뒤를 쫓아 산책길로 들어서니 주인공이 바뀌는 느낌이다. 갈대밭에 들어선 사람들이 오히려 군데군데 피어난 가을꽃만 같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 울음을 들으며 그들의 시린 발목을 잠깐 떠올려 보았다.
방대한 갈대 습지가 감싸 안은 무수한 생명을 생각하며 걷는 길은 경이롭기만 하다. 대기오염과 코로나19 등,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 포위된 채 사는 요즘, 이곳은 생태계의 보고(寶庫)라는 점에서 위안을 주기 충분한 장소다. 산책로 너머로 가슴에 머리를 파묻은 새떼들이 모여 졸고 있었다. 가을 햇살마다 묻어있는 갈대 울음을 쓸어내 서랍 속에 넣어둔다면 일상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까?
전망대에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다 전에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그냥 천천히 돌아 나왔다. 순천만 9경(景) 중 하나인 바다와 강이 만나는 S자 갯골, 원형 갈대 군락과 칠면초를 보지 못한 미진함이 남았지만, 몸을 지키는 것이 요즘은 최대의 과제라고 핑계를 대본다.
일행을 기다리던 다른 분들과 갈대커피와 칠게빵을 먹으며 갈대밭에 내려앉는 노을을 맞는다. 가을이 짧아 아쉬운 것처럼 노을도 잠깐이라 왠지 서럽다. 가을볕도 점차 사그라들어 금세 서늘해지고, 모두 잰걸음으로 버스 안으로 들어섰다. 갈 길이 또 멀다.
어떤 곳은 지명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 낙안읍성이라는 서정적인 지명과 별개로 순천은 여수와 더불어 ‘여순항쟁’이라는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지역이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을 거부하고 일제히 궐기한 군인들과 군민들 피와 함성이 배어 있는 이곳. 지배자의 관점과 논리에 따라 ‘반란’이나 ‘사태’로 호명되던 어떤 사건은 그동안 시대의 흐름과 요청으로 ‘항쟁’이나 ‘혁명’, ‘민주화 운동’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고, 일부나마 보상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의 진실 규명 의지와 노력이 이루어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잘못된 기억은 또 옷을 갈아입는다.
오늘 답사는 함께 한 모두에게 무기력했던 일상의 활력과 함께 의미있는 장소를 선물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러기 날개 옆에 아직 꾸지 않은 꿈을 묻어두어도 될 성싶은데, 잠자리에 들면 갈대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