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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동칼럼 2024] < 세계문화유산 華城 바로알기 41편 > 화성 4대문에 숨겨진 정조의 전략적 사고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4-07-08
조회수
222

화성에는 남북 방향으로 팔달문과 장안문이 있고 동서 방향으로 창룡문과 화서문 등 4대문이 있다. 그중 한양을 향한 장안문과 그 반대 방향의 팔달문이 수원화성의 남북대문 구실을 하는 대표적인 성문이다. 성곽에서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외성을 가리킨다. 성곽에서 문은 매우 중요하다. 성을 공략할 때 문부터 공격하기 때문이다. 문이 함락되면 성이 함락되기에 그렇다. 정조는 성문에 특별한 방어대책을 세웠다. 문 앞에는 성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해 옹성을 세웠다. 성문 좌우에는 적대를 쌓았다. 적대는 적군이나 주변을 감시하여 문루 방어를 담당했다. 홍예 위에는 문루를 세우는 등 완벽한 방어책을 구축했다. 물론 성곽 문짝도 철판을 입힌 두꺼운 문으로 만들었다. 화성성역의궤에 두 선문은 철엽으로 싸고 횡경을 갖췄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문은 문짝을 말한다. 철엽은 나무 문짝에 붙여 놓은 철판을 일컫는다. 횡경은 성문을 잠그는 나무 빗장을 말한다. 큰 성문을 여닫을 때 문짝이 밖으로 밀려 나가지 못하게 원산석을 문밖 바닥 가운데에 박았다. 모든 문짝은 바깥 홍예에 설치했다. 성문에는 홍예가 안쪽에 하나, 바깥쪽에 하나로 구성돼 있다. 바깥 홍예가 안쪽 홍예보다 작다. 성문의 취약한 부분인 문짝 여닫는 회전축을 선단석 뒤에 숨겨 보호하도록 만들었다. 화성에서 성문과 문짝만큼 방어전략에 취약한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옹성은 성문 밖에 돌출한 원형의 작은 성을 가리킨다. 한양에는 동쪽 흥인지문에만 옹성을 두었다. 이를 유성룡은 한양성의 최대 약점이라고 반계수록에서 지적했다. 반면에 화성은 동서남북 4대문에 모두 옹성을 설치했다. 옛 제도에는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한쪽 문만 열었다. 화성은 사방으로 열리고 중앙에 문을 설치하여 정문과 마주하였다. 옹성 상부에는 여러 가지 공격 시설을 구비하였다. 화성 4대문의 문짝이나 홍예, 옹성 등을 살펴보면 화성 축성에 정조가 얼마나 전략적 사고를 했나를 읽을 수 있다


글쓴이 : 김훈동

■ 주요경력

현) (재)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전)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수원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신용보증기금 감사 등 다수


■ 주요저서

「정조능행의 무형유산적 지평」(공저)
「틈이 날 살렸다」

「수원화성의 숨결, 시와 그림으로 빚다 」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