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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하반기 역사탐방 후기] 이상수 : 강화도 역사 탐방 기행문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4-11-27
조회수
52

강화도 역사 탐방 기행문 - 이상수


사람은 떠나야 하는 존재다.

그들의 일상은 늘 정해져 있고 잘 짜여진 시간속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질 못하곤 한다.

순간의 파격이 필요한 이유다.

사람에게 시간은 인위적인 무형의 흐름이지만 공간은 자연적이면서 도전과 탐험의 대상이기도하다.

가끔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서 홀연히 낯선 곳으로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함께 하고픈 충동이 내 의식속에서 강렬하게 느껴진 것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정조인문예술재단에서 주관하는 역사탐방 참석에 대한 초대가 왔고 나는 서슴없이 승락하고 말았다. 날씨도 한몫 했기 때문이다.

11월 중순이지만 가을 정취가 모든 세포 하나 하나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이번 역사탐방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강화도와 교동도의 인문 여행으로 평소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떠나기 하루 전날 밤을 작은 설렘으로 살짝 놓치고 말았는데 다행히 아침 730분까지 경기문화재단 출발 장소에는 늦지 않게 도착 할 수 있었다.

언제들 오셨는지 중년의 남여가 삼삼오오 모여 대절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인상들이 후덕하고 밝은 얼굴들이었다.

처음보는 분들이라 선뜻 먼저 인사하기가 겸연쩍어서 이 삼보 뒤에 서서 천천히 스며들기로 했다.

잠시후 재단 직원이 준비물품을 가지고 나왔고 대절버스도 도착 했다.

모두 31명이 역사 탐방길에 올라 탔고 정규야 사무국장의 인사말과 일정 소개로 다소 들뜬 기분을 가라앉힐수 있었다. 이어서 김영호 재단이사의 역사 탐방의 취지와 강화도의 역사, 방문하는 초지진과 정족산성, 전등사, 교동 향교, 교동 대륭시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주어서 역사 현장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재단에서는 매년 전 후반기로 역사 탐방을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시민들에게 역사 의식와 인문학적 성찰을 높이는 계기로 삼고 직접 살아 숨쉬는 현장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함으로써 책에서 얻지 못하는 소중한경험을 할 수 있게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밥을 안먹어도 풍성한 사전 설명으로 귀호강을 하고 있는데 김밥과 알차게 구성된 간식 세트로 조식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너무 감동이었다.

수원에서 강화도까지는 1시간 30분만에 도착 했다.

 

첫번째 방문지 초지진에서 역사 탐방 회원들은

가을의 형형색색으로 짙게 물든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가슴으로 밀어내며 강화도에 첫발을 디뎠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요새였고 한강을 통해 수도 한양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150여 년 전 조선의 최전선을 마주보며 김영호이사의 열띤 해설을 듣고 있자니 해안을 향해 노출된 녹슨 포대의 무게 만큼 아픔이 느껴졌고 조선말기 어지럽던 시대 상황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또한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일본의 운양호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외세에 의한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외세의 침탈에 맞선 조선 무사들의 불굴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분개한 마음을 뒤로 남긴채 두번째 장소 정족산성과 전등사로 이동했다.

삼랑성은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데 13세기에 산성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둘레는 약 2.3km 정도의 규모로 조선 후기 여러차례 성벽과 문루를 고쳐 쌓았고, 성내에 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가 있는 곳이다. 산성 내에는 전등사, 복원된 사고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했던 선원보각, 정족산성진지가 있고 동문 안쪽으로는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승전비가 위치 하였다.

1776년 정조는 창덕궁 후윈에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왕실의 희귀서적을 보관하고 출판 및 연구하는 기관으로 만들었는데 1782년 정조6년에 보관상의 안전으로 강화에 외규장각을 세워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였고 분상용 의궤는 정족산사고에 보관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국주의 침탈이 팽배하던 시기에 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를 죽이자 프랑스는 함대를 이끌고 와서 병인양요때 외규장각에 불을 질러 대부분의 의궤  및 서적들이 소실 되었는데, 박병선 선생의 노력으로 2011년 프랑스는 장기 대여 형식으로 약탈해간 300권을 돌려주었지만 외세에 의해 화재로 소실된 4000여권의 소중한 의궤, 서적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전등사로 자리로 옮겨서 전문 해설사가 들려주는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묘법연화경 목판, 약사전, 강화 동종, 오층석탑 그리고 법당에 얽힌 인문과 역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해설을 듣고 있자니 국가 지정 문화 유산의 보고이자

독특한 전등사 만의 시대적 특징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후를 조금 넘겨 재단에서 예약해 놓은 전등사 남문입구 식당으로

자리를 함께 하며 맛있게 돌솥비빔밥과 묵무침, 해물전으로 회원들과 즐거운 소통의 시간과 더불어 점심을 나누었다.

약간의 자유 시간에는 식당입구 소나무 숲에서 다같이 사진을 촬영하였고 테라스 앞에서 가을향이 가득담긴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오후 일정은 차로 50분 이동하여 교동의 향교로 향했다. 평일 오후라서 고풍스러워 보이는 교동 향교의 관람객은 거의 없었고 우리 회원들이 전부여서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향교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펴보며 김영호 이사의 풍부한 역사이야기와 함께 실감있는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향교의 뒷배경 지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이동 장소인 교동도의 심장, 대륭시장에  들러서 60년대 분위기가 묻어나는 옛간판들을 재미있게 구경하면서 몆가지 먹거리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곳 상인들은 대부분이 6.25전쟁 당시에 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연백군에서 잠시 피난 나왔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돌아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이라고 생각하니 이산가족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배어 있는듯 보였다.

만추의 대륭시장 입구 어느 넓직한 카페에서 31명의 우리 회윈들은 커피와 담소로 유익했던 역사 탐방의 의미와 서로에 대한 진솔한 마음을 나누었는데 사람의 정이라는게 하루 반나절 동안에도 이렇게 깊이 익어 갈 수도 있구나 하는 경험을 느끼게 만들었다

모두 좋은분들이 오셨고 재단의 많은 분들이 이번 탐방을 위해 애써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인 듯 했다.

 

돌아오는 길은 멀리 석양이 드리우는 강화 해협의 일렁이는 윤슬을 잠시 바라 보다가 아름다움도 잠시 강화초지대교를 건너 육지에 이르자 다시 일상속으로 돌아온 듯 도시의 회색빛 건물들과 정체된 차량들이 무채색의 그림자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역사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과거를 잊지 않고 있기에 내일의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사람들은 떠나는 일을 지속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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