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름은 존재의 표상. 한 인물의 역사와 가치가 집약된 존재의 상징이다. 이름도 인물에 따라 많은 것을 담게 마련이다. 정조의 이름에는 여느 사람이나 임금보다 크고 넓은 자취와 가치가 담겨 있다. 시대와 학문과 사상의 포괄에서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정조의 이름으로 소환되는 게 여전히 풍부한 까닭이다. 그런 만큼 정조는 지난날에 한정되지 않고 오늘날도 계속 호명되며 연구와 작명 그리고 활동에 활용되는 게다. 독보적인 이름값과 무게와 깊이를 보여준다고 할까.
그런 이름의 위엄을 ‘정조대왕함’에서 다시 실감했다. 대한민국의 네 번째 이지스구축함은 정조대왕의 이름을 달고 있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명명이라지만 해군 함정에 정조라고? 갸웃댈 수도 있지만 볼수록 최신 전투체계를 갖춘 이지스함의 위용에 어울리는 이름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정조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군주니 말이다. 자신부터 활쏘기의 명수인 데다 무예지를 펴내거나 방어력 탁월한 화성에 장용영까지 갖추는 등 국방에 철저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명명이겠다. 그러니 정조의 이름으로 대양의 파도를 호령하며 정조대왕함은 날로 드높이 나아갈 것이다.
지난 2월 21일 정조대왕함을 친견한 소회다. 뜻밖에 이지스함을 본 것은 <화성연구회>의 활약 덕이었다. 수원시와 정조대왕함 자매결연에 앞서 ‘정조대왕함 고유제’를 화성연구회가 지낸 것이다. 초유의 함정 고유제가 아닐까 싶은 ‘정조대왕함 고유제’는 이름의 함량만큼 장엄한 바가 있었다. 식전행사인 무예24기 공연과 고유제에 함께한 수원의 시민들 또한 예를 표하며 뿌듯해하는 긍지를 내비쳤다. 이후 수원시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시의원, 시민들이 수원시와 정조대왕함의 자매결연식을 가졌다니 역시 흐뭇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원시와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정조대왕함은 앞으로 대양을 누비며 국방임무를 멋지게 수행하리라.
이처럼 정조의 이름으로 하거나 해야 할 일은 많고 다양하다. 정조라는 이름의 부가가치가 커서 그 이름과 더불어 도모할 세상을 자꾸 부르는 것이다. <정조인문예술재단>도 이름에 담긴 지향 이상으로 인문예술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심화 확대하고자 한다. 이보다 앞서 자발적으로 조직한 민간단체 <화성연구회>는 30년을 바라보는 역사 속에서도 수원화성의 오늘과 내일을 위한 활동을 모색하며 한결같이 힘을 모으고 있다. 정조라는 놀라운 인물이 이곳에 축성을 하지 않았다면, 서로서로 시간과 마음을 내어 더 좋은 활동을 찾는 열정도 못 만났을 것이다. 어떤 이름은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도록 미래 세대를 추동하는 영향을 오래도록 미친다.
그런 정조의 이름 앞에서 많은 일을 떠올리곤 한다. 누군가는 ‘정조학’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누군가는 ‘정조대왕기념사업회’의 중요성을 역설했듯, 학술적으로도 할 일이 산적한 것이다. 그 또한 문화도시 수원시의 정체성이나 방향에 부합하는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도시로 중요한 모색이라 하겠다. 문화예술의 부가가치를 앞세우고 주창하면서도 실제로는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할 길이다. 그런 역량을 길러 가다 보면 거기서 또 다른 문화 예술의 확장이 일어나고 정조의 이름으로 열어갈 방향이 보일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 밝히고 살피고 차려온 것보다 정조의 모든 것은 더 크고 깊으니까.
그리하여 또 만난다. 정조의 꿈이 아름답게 실현된 수원화성 안팎에서. ‘사람을 위한’ 정조의 인문예술정신이 살맛 돋우는 문화도시에서 함께 살기 위해. 그렇게 정조와 화성의 이름으로 보다 즐거운 문화발전소를 가꾸려면, 새 봄이 오듯 새로운 물을 대야 하리라. “도랑 터서 물을 대는” 정조의 시구처럼.
* ‘영화정(迎華亭)에서 화성부(華城府) 소재지를 바라보다’의 시운에 화답한 시.
성의 망루가 우뚝하게 일어나니 樓櫓居然起
강과 산이 갑자기 새로워졌도다 山河頓與新
경의 총리한 노력 고맙기도 해라 多卿摠理力
날 위해 지휘를 신기하게 하였네 爲我指揮神
휘하엔 용맹 뛰어난 군사들이요 旗鼓超乘士
여염엔 본업 즐기는 백성들일세 閭閻樂業民
그 토지는 자고로 상지상등이니 厥田元上上
오는 봄엔 도랑 터서 물을 대야지 疏漑擬來春
글쓴이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