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성곽의 꽃이라 불리는 수원화성은 230년 전에 세워졌다. 화성에 설치된 시설물 19종류에 60개를 보면 당시의 건축술이 대단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신하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 전국에서 몰려온 무수한 석공들과 목수들, 맨주먹으로 공사장의 돌과 흙을 나른 많은 이름 없는 장인들, 이들의 생각과 실행 속에 화성이 축성됐다. 그 가운데 방어시설인 치(雉)가 갖는 의미는 크다.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에 접근하려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치는 군사들이 몸을 숨기고 적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치는 꿩을 가리킨다. 치성은 꿩이 제 몸을 숨기고 주변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성에는 순수한 치가 여덟 곳이 있다. 사실상 치의 역할을 하는 시설물 여덟 곳을 포함하면 모두 열여섯 곳에 치성이 있다. 치는 외관상 미적으로 보잘 것 없다. 하지만 화성 시설물 중 기본 방어시설이다. 적이 성벽에 가까이 붙게 되면 성에서 방어하기가 매우 어렵다. 성 위에서는 가까이 접근한 적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출된 좌우로 마주하는 치에서는 적의 옆구리를 협공하면 적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 화성에서 비록 위계는 가장 낮지만 치의 주기능은 높게 평가된다. 순수한 치는 동일치,동이치,동삼치,서일치,서이치,서삼치,남치,북동치 여덟 곳이다. 치와 유사한 구조로 성벽이 밖으로 돌출된 사실상 치 역할을 하는 곳은 포루다. 성벽의 보강책으로 제기됐다. 포루는 치성 위에 집을 지어 올려 군사들이 비바람을 피하고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한 곳으로 동북포루,서포루, 북포루, 동일포루, 동이포루 등 다섯 곳이다. 이밖에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동북노대를 포함해 여덟 곳이 치성의 역할을 했다. 치는 본래 지형이 평탄한 곳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여 양 측면에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데 효과적인 시설이다. 우리나라는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산성을 중시하여 치성의 유효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서애 류성룡은 “치성이 없다면 이는 성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중국 병서를 인용하면서 치성을 둘 것을 주장했다. 정조는 이를 받아들여 치성을 짓게 하였다. 화성의 지형이 서쪽의 팔달산을 낀 경사진 불규칙한 것이었으므로 치성이 모두 똑같은 형태로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지는 않았다. 각기 지형조건에 따라 조금씩 형상을 달리하였다.
글쓴이 : 김훈동
「수원화성의 숨결, 시와 그림으로 빚다 」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