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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에세이

[유성호 칼럼 2025] ‘오빠생각’ 100년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5-03-28
조회수
75



훌륭한 작가나 예술가들의 탄생과 죽음을 기리고 그들이 남긴 주요 작품을 기념하는 행사가 우리 주위에는 제법 많다. 가령 올해는 윤동주 서거 80주년이고,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이러한 인물이나 텍스트는, 그러한 기념행사를 통해 낯익은 새로움의 순간으로 새삼 찾아오곤 한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국민동요 『오빠생각』이 쓰여진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소파 방정환(1899~1931)1923년 한국 최초의 아동문학지 『어린이』를 창간하여 매달 동시를 공모했는데, 수원 출신의 열두 살 소녀 최순애(1914~1998)192511월에 이 작품을 투고하여 입선을 하게 된다. 이듬해인 1926년 대구 계성중학 음악교사였던 박태준이 이 작품을 발견하여 동요『오빠생각』으로 탈바꿈시켰고, 1927년 가수 이정숙이 첫 녹음을 하였다. 이 노래는 아동문학가 윤복진(1907~1991)이 대구에서 하기보모강습회에 사용하기 위해 철필(鐵筆)로 제작한 『동요곡보집』(1929)에 『옵빠생각』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이러한 맥락으로 박태준 고향 대구에 『오빠생각』 노래비가 서 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 동시는 소녀 최순애의 실제 경험이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최순애를 비롯한 6남매가 수원에 살고 있었는데 첫째가 아들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딸이었다. 오빠는 봄에 서울로 떠나며 곧 돌아오겠다고 하였는데 가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낙엽이 지고 하늘에서 기러기 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순애는 오빠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동시로 썼다. 순애의 여덟 살 터울 오빠 최영주(1906~1945)는 일제강점기에 화성소년회를 조직하였고 잡지 『학생』을 발행하면서 소년운동에 투신했던 유명한 출판편집자이자 동화작가이다. 방정환이 조직한 어린이운동 단체 색동회동인으로 활동하였고, 일찍 타계한 방정환의 무덤을 망우동에 만들고 묘비를 세웠고 스스로도 방정환 옆에 묻힌 평생 아동문학가였다.

 

『오빠생각』이 입선한 다음해인 1926, 마산 사는 열여섯 살 소년 이원수(19111981)가 『고향의 봄』으로 『어린이』에 당선을 한다『어린이』를 통해 연년생 등단을 하게 된 인연으로 이원수와 최순애는 퍽 가까워졌다. 특별히 이원수가 마산에서 순애에게 편지를 줄곧 보냈고 이 연서는 10년간 이어졌다. 이원수가 독서회 사건으로 1년여 옥고를 치를 때 최순애는 정성스레 옥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결국 이 소년소녀 문사는 1936년 결혼하였고 45년간 해로하였다. 이원수는 결혼 후에도 작품활동에 진력하여 한국 대표 아동문학가가 되었고 최순애는 가정생활에 충실한 것으로 자신의 생애를 살았다. 지금 이들 내외는 나란히 묻혀 우리로 하여금 지금도 백 년 전 동요를 부르게 하고 있다.

『고향의 봄』은 동요 『산토끼』(1928)를 지은 이일래가 작곡하여 마산 일대에서 불리다가 화성 출신 홍난파가 다시 작곡하여 국민동요 『고향의 봄』으로 이어져갔다. 홍난파는 작곡집 『조선동요100곡집』(1929)에 이 노래를 수록함으로써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빠생각』 시인과 『고향의 봄』 작곡가는 모두 수원-화성 출신이다. 이원수의 『고향의 봄』 노래비가 수원 팔달산 기슭에도 세워져 있는 것은 이러한 사연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최순애의 『오빠생각』과 이원수의 『고향의 봄』은 이렇게 한 해 사이로 세상에 나와 한국 아동문학사의 빛나는 별이 되었다. 앞의 것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마며 서울로 향하는 이의 이향(離鄕) 과정을 포착했다면, 뒤의 것은 고향 떠난 이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회귀적 망향(望鄕) 정서를 곡진하게 담았다. 정지용의 시구(詩句)처럼, 어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겠는가.

 

근대는 타향살이라고 했거니와, 근대인들에게 고향이란 돌아가야 하지만 끝내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올해 『오빠생각』 노래비가 수원에 선다고 하니, 이러한 아름다운 동요가 시민들의 그리움을 한층 더 톺아 올리는 예술적 계기가 되어주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본다.

 



글쓴이

주요약력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시집
『서정의 건축술』,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등.

수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대산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