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재단법인 정조인문예술재단

통합검색

정조대왕

학술논문

  • 정조(正祖)의 계지술사(繼志述事) 기념사업과 『국조보감(國朝寶鑑)』 편찬 학술논문

    정조(正祖)의 계지술사(繼志述事) 기념사업과 『국조보감(國朝寶鑑)』 편찬

    저자허태용

    발행연도2020

    발행처한국사상사학회

본 논문은 정조 6년에 이루어진 『곡조보감』 펀찬의 정치사상적 의 미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였다.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한 정조는 왕권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재위 초기 洪國榮과 徐命善 등 최 측근 중섬의 정곡 운영을 추진하면서 구조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군사 적 친위 세력을 부식하는 데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이 영조를 비롯한 션대 임금들의 유일한 정치적 계승자라는 위상을 지속적으로 확인하 고 대내외에 과시하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정조가 틈틈이 강조한 ``繼志述事``의 표방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열성의 어제를 펀찬하거나 선대 임금들의 능을 전알하는 행사 등은 열조와 정조 자신의 정치적 계승 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조처 들이였고 『景宗實錄』을 개수한 것은 영조로부터 자신에게 이어지는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한 사업들이였다. 특히 재위 5년이였던 1781년은 숙종이 태어난 지 두 주갑이 되는 동시에 영조가 세제로 책봉된 지 한 주갑이 되는 신축년이였기에 계지술사의 기념사업이 집중되였는데 정조는 바로 이 시점에서 『곡조보감』의 펀찬을 전격적으로 명하였다. 정조는 이 사업이 열조들의 뭇과 사업을 후대에 이루는 것으로 해 석하면서 『영조실록』의 펀찬이 종료되자마자 보감을 갖추지 못한 열 두 션대 임금 모두의 보감을 펀찬할 뿐 아니라 기존에 펀찬된 보감들 까지 모두 종합해서 전서로 만들라고 명하였다. 그 결과로 이듬해에 총 68권의 『곡조보감』이 완성되였는데 정조는 종묘의 션대 임금 전부 의 묘실에 각각 직접 아뢰면서 『곡조보감』을 올리는 예식을 거행함으 로써 모든 션대 임금과 자신의 정치적 계승 관계를 개별적으로 확인 하였다. 이제 곡왕으로서의 정통성을 확인했다는 자신감 위에서 정조는 자 신이 곡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제거의 대상에 포함되였던 인물들까지 사면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였다. 요컨대 『곡조보감』의 펀 찬과 종묘 봉안은 재위 초기의 정조가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그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추진한 기념사업들을 종합적으로 마무 리한 정치적 절차였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