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재단법인 정조인문예술재단

통합검색

정조대왕

학술논문

  • 국왕의 동선과 정치재량권의 관계에 대한 연구 학술논문

    국왕의 동선과 정치재량권의 관계에 대한 연구

    저자박현모

    발행연도2020

    발행처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이 글의 목적은 조선후기의 국왕 정조의 도성 밖 움직임, 즉 능행과 수원화성행차 등의 동선(動線)을 조사하여, 국왕의 활용공간과 정치재량권이 상호 비례한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정조실록』에 있는 정조의 동선을 그 이전의 세종이나 영조, 그리고 그 뒤의 순조의 동선과 비교했다. 그 결과 정조는 순조보다 훨씬 더 자주 백성들을 만났음을 파악했다(각각 연 평균 2.7회와 0.5회). 궁궐 안에서만 살았던 순조와 달리 정조는 백성들을 자주,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준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조는 순조보다 정치재량권 - 이른바 왕권 -이 더 컸다. 물론 국왕의 재량권을 구성하는 요소가 다양하기 때문에 언관의 탄핵에 대한 거절만으로 왕권의 크고 작음을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막연하게 이야기되어왔던 왕권의 크기를 수치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일정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조사 결과 순조가 언관들의 탄핵을 ‘거절’할 수 있는 재량권이 부왕 정조보다 낮았음이 밝혀졌다. 도성 밖 행차 등의 행동반경이 정조보다 좁았던 순조는 탄핵을 거절할 수 있는 재량권에 있어서도 작았던 것이다. 그러면 이 연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정조가 조선 후기의 혁신군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기득세력인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련의 개혁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인데, 그 힘이 직접 백성들을 만나고 소통한 데에서 발원했다는 점이다. 조선 전기의 세종이 그랬듯이 정조는 중간관리층의 방해 없이 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나고 대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왕의 재량권도 아울러 커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