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영우원 · 현륭원 원행에 대한 고찰
저자정해득(Chung, Hai-deuk)
발행연도2020
발행처조선시대사학회
정조는 즉위 직후에 경모궁과 영우원에 행차하는 격식을 정한 『궁원의』를 만들었다. 그것은 종묘의 ‘之次’로 규정한 사도세자의 위상을 확립하려는 목적이었다. 정조는 1782년 문효세자가 탄생한 이후부터 사도세자의 국왕추숭 문제를 염두에 두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문효세자가 1786년 서거하자 정조는 왕자생산을 위해 수빈박씨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1789년 영우원을 더 좋은 길지로 옮겨 자식을 얻는다는 계획을 실행하였다. 그 기간 중 정조는 10차례나 행차하여 예를 표하였다. 정조는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원행정례를 제정하면서 과천과 수원에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여 원행에 대비하였다. 그 결과 수빈박씨가 懷妊하여 이듬해 6월 순조가 태어났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蔭德으로 생각하였고, 조종의 聖君들에 버금가는 공덕을 세운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사도세자의 회갑년인 1795년에는 8자 존호까지 올려 사실상 국왕에 해당하는 예우를 하였다. 정조는 貞陵, 章陵, 獻陵을 경유하여 원행하기도 하였다. 각각의 메시지는 封陵, 追崇, 讓位로서 정조가 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자를 즉위시켜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숭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또한 정조는 원행때마다 關王廟에 들렸는데, 사도세자가 武德을 갖춘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정조는 현륭원 주변을 답사하여 자신의 능침자리를 살펴보면서 풍수적 보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移住한 수원부민들의 민원을 알아보고 화성경영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장차 왕릉을 호위하게 될 수원도 그 격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 정조가 가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