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문체정책과 제술부과
저자심경호
발행연도2020
발행처진단학회
정조는 영조를 이어 18세기 조선의 정치, 학술, 문화, 과학의 모든 분야에 혁신의 기운을 고취시켰다. 정조는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방향을 읽고, 각 분야의 혁신에 필요한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군주가 숭유중도의 이념을 각 방면에서 실천한 것은 국체의 안정을 도모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현실인식의 평면화, 지향이념의 협소화, 문화 규모의 왜소화, 학문방법의 고답화를 초래할 우려도 있었다. 따라서 인식, 지향, 규모, 방법은 제왕 정조의 정치와 학술사상을 고찰할 때 주목해야 할 핵심 키워드이다. 정조는 성균관 유생이나 초계문신들에게 제술, 그것도 사육변려체의 제술을 지나치게 강요했다. 심지어 정약용은 강요된 사육변려체의 제술을 모두 ‘후회를 기록하는’ 『冽水文簧』 3책에 몰아 두었다. 정조는 과거지문을 ‘就實之學’으로 혁신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기획은 정조의 학술사상에서 가장 자양분을 많이 흡수했다고 할 수 있는 정약용에 의해 통렬하게 비판되었던 것이다. 정조는 제술을 통해 당면의 현실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논의를 형식 우위의 문체로 담아내게 했다는 사실, 여기에 정조의 정치 및 학술 이념과 방법 사이의 불균형이 숨어 있다.